김문오 코네스코퍼레이션 방폐물사업본부장 │ 입력 2026.07.23 08:00 호수 4561 지면 11면
후행핵주기까지 설계해야

김문오 코네스코퍼레이션 방폐물사업본부장.
7월 들어 날씨가 종잡을 수 없다. 체감 38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며칠 이어지는가 싶으면, 시간당 수십 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지며 기온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무더위와 폭우가 번갈아 오면서 전력 수요도 들쑥날쑥한다. 올해는 이미 90GW를 넘겼고, 폭염 절정에는 최대 전력 수요가 100GW에 육박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렇게 날씨 따라 출렁이는 여름 수요는 계절이 지나면 가라앉는다. 정작 무거운 변화는 인공지능(AI)이 끌고 온다. AI 데이터센터는 날씨나 계절과 상관없이 24시간 쉬지 않고 전기를 쓴다. 정부가 발표한 3대 AI 메가프로젝트는 앞으로 10여 년간 원전 수십 기에 맞먹는 전력을 소비할 전망이고, 반도체 클러스터 수요까지 겹친다. AI는 계절적 수요가 아니라 수요 자체의 바닥을 끌어올리는 변수다.
이 전력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크게 좌우된다. 흐린 날과 폭우가 잦으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예비율이 불안해진다. 데이터센터는 1초도 멈추면 안 되기 때문에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로는 이런 안정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24시간 일정하게 공급할 수 있는 기저전원은 지금으로선 원자력 외에 대안이 없다. 그래서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을 더 짓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대개 '몇 기를 더 짓느냐'에서 논의가 끝난다. 건설과 운영 과정(선행핵주기)에만 관심이 쏠리고, 그 원전들이 나중에 만들어낼 사용후핵연료와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후행핵주기)는 늘 다음 기회로 미룬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펼쳐 보면 이 비대칭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발전 쪽은 신규 원전과 SMR 상용화까지 준공 연도와 물량이 촘촘히 박혀 있다. 반면 원전의 대가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처분 물량이 숫자로 붙지 않고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문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중·저준위라고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경주 방폐장은 단계별로 처분 용량을 늘려가고 있지만, 애초 설계된 총량 자체가 과거 원전 규모를 전제로 잡은 숫자다. 게다가 그 총량은 상당 부분이 원전 해체 폐기물 몫으로 잡혀 있는데, 정작 해체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이다.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해체가 본격화되면 콘크리트와 토양 폐기물이 쏟아진다. 여기에 신규 건설과 계속운전 물량까지 겹치면, 과거의 설계 버틸 수 있을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
물론 발전 계획과 방폐물 계획은 근거 법이 다르고, 각자 소관 부처에서 따로 세운다. 계획을 따로 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지금 구조는 발전 규모를 먼저 정하고, 그에 따라 폐기물 발생량을 뒤늦게 계산하는 식으로만 돌아간다. 원전을 몇 기 더 짓겠다고 결정하는 자리에서, 그만큼 늘어날 폐기물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는 제대로 묻지 않는다.
발전 단가에 관리부담금을 얹어 장부상 돈을 쌓아두긴 한다. 하지만 이 부담금은 부지 확보가 실패할 가능성이나 지역 갈등 비용을 빼놓은, 꽤 가상의 표준 단가에 가깝다. 결국 처분 리스크는 나중에 돈으로 메우면 그만이라는 착각이 생긴다. 돈을 적립해뒀다고 부지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발전을 키우는 결정과 그 뒷감당이 이렇게 따로 노는 한, 후행 대책은 늘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다. 원전을 몇 기 더 짓겠다고 결정하는 그 순간에, 늘어날 폐기물 총량과 처분 여력을 함께 저울에 올려야 한다. 그래야 발전 확대의 진짜 비용이 결정 단계에서 드러난다. 이건 계획서 한 권을 어떻게 고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의 순서를 바로잡느냐의 문제다.
순서를 바로잡으면 발전 확대의 실제 부담이 첫머리에서 눈에 잡힌다. 후행 관리가 사후에 수습하는 비용이 아니라, 결정을 내릴 때 이미 셈에 들어간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실제로 굴러가려면 결국 부지를 내주는 지역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 신뢰는 계획이 처음부터 솔직할 때 앞당겨진다. 감당할 몫을 숨기지 않고 먼저 내보이는 계획, 그것이 신뢰의 바탕이 된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전력 수요는 한 단계 더 뛰어오를 것이다. 그 전력을 원자력으로 감당하기로 했다면, 발전설비 계획과 폐기물 처리 계획은 처음부터 동등한 무게로 다뤄져야 한다. 후행핵주기는 더 이상 발전 계획의 뒷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프로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박사 ▲(現)코네스코퍼레이션 방폐물사업본부장 ▲(現)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재무이사▲(現)한국방사성폐기물협회 자문위원
출처 : 전기신문 김문오 코네스코퍼레이션 방폐물사업본부장 webmaster@ele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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